여동생의 최근 연애사는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1년 넘게 사귀던 애인과 결국 결별하고 약 1달간을 프리하게 지내던 동생은 같은 과 후배의 고백을 받아들여 다시 커플이 되었다. 후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연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동생을 영계 킬러라 놀렸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고. 아무튼 동생은 처음에 별 생각없이 고백을 받았는데 연하남이 굉장히 헌신적으로 잘 해주고 아껴주는 모습에 지금은 꽤 애정이 기운 모양이다. 뭐. 아무렴 어떠하리. 새 사람 만나서 잘 지내라라고 축복해줬는데...
이 평범한 연애가 카오스가 된 이유는 별거 없다. 헤어졌던 동생의 전 애인이 동생에게 다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제까지 동생에게 들어왔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직선적인 순애를 보이며 동생이 무려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기다리겠다고 했다던 말을 듣고 나는 내 눈앞에서 담배를 피며 어쩔줄 몰라하는 이 여자가 나와 같은 배에서 태어난 사람이 맞는지를 의심했다. 누구냐 이 마성의 여자는.
아무튼 동생은 이것 때문에 최근에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전 애인에게 그런 고백을 받았을 때 동생은 전 애인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래저래 자주 싸우긴 했어도 1년 동안 정도 많이 들었고 동생 역시 쿨하게 헤어졌다고는 하지만 꽤 후유증이 있던걸 생각하면 저런 말 듣고 흔들리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런데 어제 동생이 내 방 와서 담배 피우면서 하는 말은, 아무래도 연하남과 계속 사귈 예정인 것 같다. 도저히 이 애를 못 버리겠다고 하더라. 본 적은 없지만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동생에게 애교도 잘 부리고 암튼 귀엽게 보이면서도 또 동생을 많이 챙겨주고 신경써주는 모습이 동생의 마음을 잡은 모양이다.
그래. 좋다. 동생이 누구와 사귀건 그거야 문제는 아니다. 동생이 좋다면 말릴 이유야 없지. 그런데 한 가지가 문득 떠올라 나는 동생에게 물어봤다.
농어: "야. 그런데 그 연하남. 군대 안 갔지?" 동생: "응. 아마 내년에 간다고 하던데..." 농어: "너 그 애가 군대가면 기다려줄 자신 있냐?" 동생: "........"
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나 역시도 예상했던 바였다. 담배 한 모금을 더 빨더니 동생은 솔직히 말해서 자신 없다고 말했다.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한 마디 충고를 더 했다. 군대 보낸 후에 헤어질거면, 차라리 지금 정리해버리라고. 너 믿고 군대간 애 바보 만들지 말고. 동생은 말 없이 담배를 피우더니 더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방을 나갔다.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군대에 있던 시절, 애인과 헤어진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내가 있던 곳에는 없었지만, 옆 포대에서는 진짜 그게 원인이 되어 탈영한 놈도 나왔고 내가 있던 곳에서도 개우울모드로 들어서서 갈구던 선임을 홧김에 때려버리고 영창간 녀석이 있었다.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척 봐도 우울이 눈에 띌 정도로 침울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령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평소처럼 웃는 사람들도 어딘지 평소 모습에서 응어리진 부분이 조금씩 보이곤 했다. 아무튼 다들 힘들어했다. 동생이 묘사하는 연하남의 모습을 봤을 때,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군대라는 환경은 특히 어떤 소중한 존재에게 자기를 기대고 싶게 만들어지는 환경이고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게 기대고 그걸 지지대 삼아 버티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애인이라면, 그걸 잃었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사실 그 연하남이 동생에게 차여서 괴로워하건 말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차여서 괴로워하는 거야 개인 문제고 누가 구원해줄 수 없는 문제거든. 다만, 평소 동생이 말하면 그래 네 생각대로 해봐라고 하던 내가 드물게도 동생에게 충고식으로 말한 이유는 동생이 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증오 혹은 우울의 원인이 되는건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을까나. 뭐 동생이 어떤 결정을 하건 말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난 그거에 대해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말해주고 각오를 확인하면 땡이다. 각오가 안 섰어도 하겠다면 말릴 생각 없다. 그건 그 녀석 인생이니까... 모쪼록 동생 본인에게 후회없는 결정을 하고, 거기에 동생이 상처받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다.
P.S: 여담이지만, 나는 내가 군대가기 전에 사귀었던 그녀에게 군대가기 전이 아닌, 군대에 있을 때 이별 통보를 받았을 상황을 가정해보면 오싹한 기분을 느낀다. 안 그래도 감정기복이 큰 내가 그 상황을 견뎠을까? 물론 미친 행동을 하기 전에 이중삼중 록이 걸리는 내 성격상 남들이 말하는 소위 미친 짓까지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지. 그 당시 헤어졌을 때의 기분을 떠올리면 그 때 아무 일도 안하던 시절이라 다행이라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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