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있어서 독서하기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면 난 지하철을 꼽을 것이며, 그 중에서도 구석자리를 꼽을 것이다. 아침에 나와서 지하철을 탔을 때 구석자리가 비어있으면 그 날은 기분이 매우 좋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구석자리는 지하철의 인기석이니까. 가끔 7호선을 타게 되면 일부러 노원에서 안 타고 방학에서 1호선을 탄 후 도봉산까지 가서 환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구석자리 확보율이 매우 높아진다. 구석자리에 앉아 한쪽 어깨를 기대고 귀에 이어폰을 꽂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독서하는 순간만큼 쫄깃한 순간도 몇 없는 편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장면이 희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멍하니 보낼 바에는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편이고, 사람들이 많기에 폐가 되는 행동을 자제해야하는 지하철 내에서 남에게 폐도 안 끼치고 시간 보내기도 좋은 일이라면 역시 독서가 최고다. 요즘은 DMB폰도 보급이 많이 됐고, 휴대용 기기도 많이들 가지고 있어서인지 책을 읽는 모습보다는 이어폰을 꽂고 DMB방송을 시청하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독서하는 사람들은 많다.
-지하철 독서에 대한 내 선호도는 주객전도급이라서 가끔 주말에는 책 읽으려고 지하철을 타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4호선 종점인 당고개나 7호선 종점인 도봉산(장암이 종점이긴 하지만, 도봉산도 준 종점급이니)이 가까운지라 거기까지 간 후에 아무도 없는 지하철 칸에 맨 먼저 들어가서 좋아하는 구석자리에 앉아 거기서부터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사람이 빠지건 말건 상관없이 정신없이 읽다보면 어느 새 종점. 그러면 내려서 반대방향으로 올라탄다. 이 시간동안은 잠시 휴식.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먹기도 하고, 앉아있느라 굳어진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역사 내는 금연구역이니 담배는 못 피운다는 점 정도? 그래도 상관없다. 이후 종점에서 다시 반대방향으로 타서 자리 잘 잡고 계속 독서. 이후 책을 몇 권 가져왔고 여유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이 짓을 반복... 한다지만 2번 이상 해본 적은 없다. 한번 종점까지 왔다갔다하는데 2시간은 너끈히 넘겨버리는 편이고 그 사이 못 읽을 책은 없으니까. 운이 좋으면, 한번 왔다간 후에 집근처 역에서 내릴 때 추가요금이 붙지 않으면 웬지 기분이 좋다. 붙어봤자 그리 많이 붙지도 않지만... 그래서인지 가끔 자리에 앉아있을 때 내 앞에서 내가 일어서기만을 기다리며 날 노려보는 몇몇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함을 느낀다. 이 사람이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을리는 없으니까.
-반면에, 지하철 외의 교통수단 안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버스나 자동차 안에서는 100% 멀미하기 때문에 안 읽는 편이고 기차의 경우는 멀리까지 나갈 것을 상정하고 전날 잠을 안 자놓기 때문에 타자마자 잠든다. 기차 안에서도 책 읽다보면 가끔 울렁증을 느낀다. 비행기는 한 번 밖에 안 타봐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책 읽는 사람들 많은걸 보면 거기도 책 읽기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나갈 때에도 지하철을 자주 타는 편인데 비록 15분 정도 타는 거리지만 요 사이 짬짬히 읽는 책이 또 재미있다. 한동안은 책 슬럼프에 빠져서 지하철 안에서 음악 들으며 멍때린 경우가 많았는데 슬럼프가 점점 회복되면서 15분이라도 책을 읽고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출퇴근 시간대라 자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한 손으로 책장 넘기기는 충분히 익숙해졌다. 아니면 안 열릴 문 같은데 기대서 읽어도 좋고. 물론 문 바뀌는 타이밍을 잘 잡아 반대편으로 제 때 가줘야하지만.
-문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작정하고 책 읽으려고 타면 모르겠는데 어딘가를 갈 때 독서를 하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좀 문제. 내 딴에는 가끔씩 숨 돌릴 때 역 확인해주며 내릴 타이밍을 계산하긴 하지만 가끔 정말 재미있는 책을 잡게 되면 그런 것도 없어서 쌍문에서부터 읽기 시작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수리산이었다는 일도 있었으니까. 당시 내려야 했던 역은 사당. 에라이... 덕택에 지하철 이동을 할 경우 50% 확률로 잘 늦는 편.
-이런 이유로 어디를 가든 가방은 웬만해서 들고 다니는 편이고, 가방 안에는 읽는 책 2~3권은 꼭꼭 챙기는 편. 짧은 거리라서 가방을 들고가기 번거롭거나, 안 들고가는 편이 나아서 책을 못 들고 가는 때도 종종 있는데 이런 때마다 나는 핸드폰에 텍스트뷰어라는 기특한 기능을 넣도록 건의한 사람을 업고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대개 여기 들어가있는 것은 남들이 쓴 자작소설이라거나, 내가 쓴 소설을 읽고 퇴고할 부분 체크하려고 넣은 것이긴 하지만 또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는 좋으니까 말이지.
-아무튼 지하철은 내게는 책읽기 가장 좋은 곳으로서 굳어졌다. 주말에도 별 일 없으면 지하철에 죽치고 앉아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 요즘 다시 봐야할 책들이 좀 있는 편이니까. 혹, 4호선이나 7호선 구석자리에서 종점이 다 와가도록 책만 읽는 생선을 보거든 그냥 무시해도 좋을 것 같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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